발레는 유럽에서 발생한 무용 예술이다. 발레는 본래 유럽의 궁정과 귀족사회에서 향유되던 사교무용이었다. 최초의 발레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하였다. 발레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루이 14세가 왕실음악무용아카데미를 설립하면서부터 이다. 오늘날의 발레를 고안하고 전파한 것은 러시아이다.발레는 학습과 더불어 몸에 익숙해질 정도의 수준을 터득하기 위해 수년의 훈련이 필요하며, 능숙함을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요구된다. 전 세계적으로 발레교습소에서 교육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자신들의 문화를 사용하여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발레는 15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의 소산이다. 무용은 중세 기독교의 금압주의로 인하여 빛을 보지 못하고 사생아와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무용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무용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다. 따라서 무용은 민중 속에서 민속적인 형태로 겨우 명맥을 전하였으며 일부는 귀족 계급의 오락으로서 행했으며 그러한 행사에서 무용은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 발레는 1489년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갈레츠오 공과 아라공의 이사벨라 공주와의 결혼식에 있었던 막간희극의 스펙터클로 인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의 여러 신을 등장시켜 그 호화로움은 대단한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이것이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발레의 원형이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발생하고 이탈리아의 귀족 사이에서 유행했던 스펙터클로서의 발레의 원형은 이윽고 프랑스로 옮겨 갔다.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의 발레를 프랑스 궁정에서 발전시킨 사람은 카테리나 데 메디치라는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여자였다. 그녀는 매우 무용을 사랑했으며, 또 무용의 명수이기도 했다. 그녀는 섭정왕후의 지위에 올라 권력을 마음껏 누림과 동시에 발레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역대 국왕의 애호를 받은 프랑스 궁정 발레는 꾸준히 발달하여 루이 13세의 뒤를 이은 루이 14세의 시대에 와서 대발전을 이루었다. 루이 14세는 귀족들의 아마추어적인 기예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업적인 전문 무용가의 양성에 착안, 그 교육기관으로서 1661년에 파리에 왕립무용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왕립음악무용학교가 되었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 내려오는 국립음악무용학교가 되었다. 즉 현재도 여전히 프랑스 발레나 오페라의 전당으로 되어 있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기원이다. 그 창립은 발레가 단순히 궁정이나 귀족 사이의 위안거리가 아니라 정식으로 국가의 인정을 받아 그 보호를 받게 된 최초의 사례로서도 무용사상에 큰 의의가 있다. 교장에는 륄리가 취임했으며 그는 프랑스 오페라의 창시자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한때 발레의 발전이 답보상태에 놓여 있을 때 발레의 주도권은 다시 발상지인 이탈리아로 옮겨갔다. 혁명으로 인한 공포 시대의 난을 피해 온 많은 프랑스의 우수한 무용가가 밀라노에 모여들어 19세기 초기에는 한때 밀라노가 발레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발레는 마침내 개혁의 시기를 맞았다. 19세기 전반의 모든 예술분야에서의 낭만주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시대로서, 발레 역시 그 예외일 수 없어 당연히 그 영향의 지배를 받았다. 특히 발레 예술은 그 성격상 원래 낭만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 으로는 '지젤' 과 '라 실피드'등이 있다. 많은 유명인에 의해서 일세를 풍미했던 낭만 발레도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차차 쇠퇴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매너리즘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발레는 차차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겨우 오페라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전개되었던 낭만 발레의 쇠퇴는 발레의 중심지를 러시아로 옮겨 놓았다. 17세기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서구화에 힘을 기울여 루이 14세를 본따서 무용을 장려했으며, 그것이 러시아에서의 발레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제실무용학교를 창립했으며, 이것이 러시아 아카데미로서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친 마린스키 극장이다. 그리고 또 하나,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이 개장된 것은 1825년의 일이었다. 역대 황실의 열렬한 보호와 장려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이 나라 발레의 2대 중심지가 되었으며, 거액을 아끼지 않고 프랑스로부터 교사나 안무가를, 이탈리아로부터는 무희를 각기 제1류만을 초빙하여 발레의 식민지로서 번영을 누렸으며, 마침내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고도의 고전 발레를 개화시키고 완성시켰다.
발레 무용수의 종류는 제각기 맡은 역에 따라 다르다. 즉 연기범위에 따라 정해진다. 거기에 그 무용수의 육체조건이나 개성에 따라 타입이 결정된다.
여성 무용수에는 발레리나, 더미카락테르, 카락테르 세 가지가 있다.
발레리나는 순수하게 고전적이며 뛰어난 무용수여야 하고, 춤출 때의 역할은 대체로 공주로서, 공주를 추기에 적합한 육체조건과 기품 및 우아함을 갖추어야 한다. 엄숙한 비극성과 품격이 필요하며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풍기는 품위가 요구된다.더미카락테르란 댄스즈 드 더미 카락테르의 약어이다. 발레리나가 공주역과 같이 일반적으로 고귀한 여성의 역할을 맡는 데 반해 보다 폭이 넓고 역할의 성격이 뚜렷한 것을 맡아 추기에 적격인 무용수를 일컫는다. 발레리나보다 한층 더 개성이 요구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발레리나의 역할도 소화할 수 있는 무용수를 말한다.카락테르는 전한 성격 무용수를 말한다. 발레 가운데의 민족무용이라든가 특정지어진 연기가 많은 역할, 또는 희극적인 역할을 춘다. 조연이기도 하나 그 춤으로 주역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더욱 강렬한 개성이 필요해진다.남성 무용수에게도 발레리나에 해당하는 당쇠르노블, 더미카락테르, 카락테르 세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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